아침부터 저녁까지
7월 13일
Never after
화려한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 높은 하늘 아래 촉촉한 잔디와 여러 색깔의 꽃들에 물이 한참 올랐다.
카메라를 들고 나선 길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대로 찍을 작정을 하고 나섰다.
강의동을 돌며 마음에 드는 불레틴 보드를 찍었다.
그 중에는 대단히 인상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교수님의 강의는 여전히 그 스타일, 고맙다는 말씀과 더불어 더 많은 한국사람들의 진출을 바라는 권유,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저녁에 이 말을 되새기며 나에게 유학은 어떻겠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나의 상황과 유학이라는 딜이 성립될 것 같지는 않다. 강교수님께서 요세미티에 동행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반가웠는데 내색할 시간이 없었다.
환상의 점심은 나를 과거로 돌려놓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가 많이 불렀다.
레인박사와 짧은 수업을 하게 됨에 따라 달과 지구, 태양을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전의 메일에 대한 답이었을까 수업 도중 느닷없이 나에게 박수를 쳐주신 교수님, 고맙지만 부담 천 배다. 레인박사께 보낸 메일을 열어보기 전에 내가 분명히 지웠는데 어떻게 나에게 메일을 해 왔는지 정말 알 수 없다. 강교수님과 연결이 그 정도인가?
우리 단에서 자동차를 랜트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찬물에도 잠시 들어가 푸파 푸파 하였더니 다리가 가벼워졌다. 저녁 먹고 침을 맞으면 내일의 현장학습에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어 어렵지만 침을 놔줄 수 있는가 물었다.
기꺼운 대답을 듣고 속으로 만족스러웠다.
차가 왔다. 늦었지만 아예 나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모두가 길을 몰랐던 까닭에 길을 찾는 동안 배가 많이 고파졌다. 대형마트로 가서 주차를 편하게 하고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들어간 곳은 인근의 태국음식점, 말이 태국음식이지 그렇게 맛좋은 돼지고기 볶음밥이 없었다. 그러나 태국의 날아가는 쌀은 언제나 소화가 잘 되었다는 기억에 내가 반기는 메뉴 중 하나이다. 일상적인 량보다 조금은 더 먹어도 큰 탈이 없이 소화되는 것이 내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즐거운 식사를 열어주었다.
집에 와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다시 이어진 회의석상에서 나는 남들의 열쇠를 모두 걷어 내 방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하나씩 돌려보았으나 일체가 허무하였다. 단장님의 다 구부러진 전화카드도 보람이 없었다. 다행히 랜트카와 며칠 전에 열쇠 없이 문을 열어야했던 선생님께서 있었기에 모두 서둘러 학교 경찰에게 달려갔다. 옆에 건물로 가라는데 응답기만 받던 관리실에 사람이 있었다. 내 사정이 급하다보니 설명하고 답을 듣기 급급하였으나,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들은 입도 있었다. “왜 전화 받지 않았느냐고 따지지 그랬어요?” 하시는데 난 영특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그새 깜박한 것이다. “제가 그게 그렇게 화나지 않았나봐요.” 했다. 물론 나도 아주 화나는 일은 쉽게 잊지 못한다.
내 짐을 맡아두었던 차에서 동승한 선생님께서 가방을 내려주시는 덕분에 가방을 찾느라 5분 정도 두려워하고, 두 분의 기사님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차에 다녀왔다. 가방을 찾았다고 안아달라는 후배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하였다. 물론 분명히 차에 두고 왔으므로 가방은 스스로 하차하지 아니하고 차에 있을 것인데, 두 대에 모두 없다니 잠시 아찔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열쇠를 넣고 문을 잠근 것보다 그게 더 두려웠던 것 같다.
고단한 하루였다. 일상이 긴박하고, 두렵고, 힘들었다.
침을 맞기는 힘들게 되었다. 침을 놔주시기로 한 선생님께서도 유난히 힘이 들었던지 오늘은 한잔하고 자려고 한단다.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니 무척 피곤할 것이다.
내일 버클리대학에 가면 고맙다는 말 여러 번 해야 되겠다. 나는 정말 혼자 살면 안 될 사람인가보다.
캠퍼스를 돌다 발견한 꽃
개체수가 적지만 수형이 좋았다.
고맙게도 바람 속에서 꿋꿋이 버티고 서 있었다.
아름다운 밤
별 하나에 잠시 그려본 옛날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사연들
나를 버리고 출발한 차가 나를 다시 돌아가도록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